입사한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키오스크 기능을 개발하면서 가끔 '시각 장애인은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시각 장애인 뿐 아니라 휠체어 탄 사람, 지체 장애인, 청각 장애인이 자사 키오스크 앞에 서서 주문을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상상속의 그들이 주변인의 도움 없이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성공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화면을 보기도 어렵고 키오스크 화면에 손도 닿지 않는다. 뒤에서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그곳에 있다. 점심 시간이 매우 바쁜데 도움을 주기 위해 키오스크 옆에 서서 주문 보조를 하는 점원도 무표정으로 한숨을 쉬면서 주문을 도와준다. 조마조마 하다. 나는 상상의 공간 귀퉁이에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여러가지 대안을 생각해보지만 생각은 항상 자본에서 멈춰선다.
접근성 표준안이 생겨도
취업 전에 두 개의 리모컨이라는 글을 썼다. 사실 나이든 사람이 현대 디지털 기기의 접근성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현업에서 키오스크를 개발하다 보면 일반인도 접근하기 어려운 기계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제출한 키오스크 이용 실태 조사에 보면 국내 키오스크 보급이 요식업에 약2만대를 넘어섰다. 지속적으로 기기가 보급되어야 키오스크를 생산하는 업체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키오스크에 비해 보편적으로 누구나 손 쉽게 사용하는 키오스크는 찾아보기 어렵다.
키오스크 표준화를 위한 움직임이 아얘 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에 나온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지침 이 있다.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도 있다. 하지만 이 표준안들이나 시행령은 무인 정보 단말기 설계와 제작을 강제하는 사항들이 아니다. 시행령의 4조와 5조, 6조는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 노력해야한다.'로 끝 맺는다. 한국소비자원에서 키오스크 사용시 소비자 불편, 피해 경험을 진행하면서 유관부처에 업종별 키오스크 기능 설계 표준화를 건의했다지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수 가 없다.
광고를 넣을 수 있는 기능
최근에 주문 화면 상단에 광고를 노출할 수 있는 기능을 넣어달라는 요청사항이 있었다. 이미 그렇게 운영하는 키오스크가 있기 때문에 요청 사항이 온 것이다. 하지만 키오스크에 광고를 넣는 것은 오히려 키오스크의 사용성을 떨어뜨리고 동시에 소비자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키오스크는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한다. 하지만 현재 무인 단말기는 사람을 완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고도화 되어있지 않다. 화면에 나온 UI에 의존해서 소비자가 목적을 이루어야하는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정보를 한정적으로 주어야한다. 우리 회사 키오스크는 그나마 깔끔하다. 주문에 대한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최대한 소비자가 원하는 목적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요구사항을 키오스크에 적용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몇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첫번째 노출 시킨 광고가 효과가 있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 웹 페이지는 클릭으로 효과를 측정하지만 키오스크 광고는 단순히 노출 시킬 뿐이다. 키오스크에 광고를 싣는 것은 점주 입장에서는 부가 수입이 되기 때문에 좋을 수 있지만 광고주는 이 투자가 효과적인지 아닌지를 데이터로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다중매체 이전에는 신문이나 TV에 광고를 넣는 것이 데이터로 효과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판매 실적이 올라가면 '광고 효과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방법이 없다. 주문 횟수에 따라 광고료를 받을 수 도 있지만 주문에 집중하고 있던 사람이 광고를 보고 해당 상품을 찾아보는 수고를 할 확률이 낮다. 또한 키오스크는 주문자와 시선의 높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뒤에 있는 사람이 키오스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어렵다. 특히 기다리는 동안 자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사용자를 광고에 노출시키고 싶다면 대안으로 DID(Digital Information Display)를 세워놓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키오스크 옆에 DID를 세워 놓는다면 주문자는 기다리는 동안 광고에 계속 노출된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앞에 사람이 빠졌나 고개를 들었을 때만이라도 광고 화면을 보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둘째 UI 크기가 줄어들 수 있다. 광고 영역을 한 화면에 넣는 다는 것은 레이아웃에 한 기능을 할당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문 화면의 상품이나 버튼, 글자 크기를 줄이거나 서로 딱 달라붙게 해야한다. 이렇게 되면 상품 버튼, 주문 버튼 등이 버튼으로 인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글자 크기가 줄어든다면 노년 층이 주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 UI 크기는 그대로 한 채로 광고만 넣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아웃의 배열과 크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조정되어야하는 UI를 그대로 두라는 건 키오스크의 심미적인 부분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 소프트웨어가 팔릴까? 난 다른 제품을 쓰겠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한번에 한가지만 인지할 수 있다. 주문 첫 화면에 광고와 수많은 상품 그리고 여러가지 버튼이 혼용되어있다면 오히려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특히나 키오스크는 눌러야될 것도 많고 단계도 많아서 주문이라는 목적을 이루기가 힘들다. 그런데 주문 외 다른 부가적인 요소가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주문자는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은 신문사 웹 페이지에 접속해보면 경험할 수 있다.(여긴 그나마 나은편)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
결제 지옥
광고 외에 결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가장 표준이 필요한 부분은 결제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신용카드는 VAN사를 통해서 그냥 꼽기만 하면 되지만 포인트 사용에 대한 부분은 '지옥'그 자체다. 예를 들어 A사 키오스크에는 결제 화면에 자사 포인트와 제휴사 포인트를 선택할 수 있는 화면이 있다. 제휴사 포인트를 선택하면 여러 종류의 포인트가 나오는데 여기도 선택을 하면 나의 번호를 입력하여 조회를 하고 조회된 포인트를 적립만 할건지 사용할 건지 등의 선택 화면이 나온다. 만약 키오스크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 실수로 이 화면에 진입하면 취소를 눌러야하는데 취소를 누르면 장바구니 상품이 초기화 된 상태로 상품 선택 화면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콜백 헬 처럼 (callback hell) 단계 지옥에 빠진다.
누군가 포인트 정보를 조회하고 적립하고 사용을 처리하는 공간을 하나로 모아 놓는다면 포인트 사용이 편리해질 것이다. 고객이 결제를 위해 신용카드를 꼽으면 신용 카드사에서 법령으로 지정된 저장소에 접근해 고객의 포인트 정보를 찾고 포인트를 적립해준다면 사용 여부만 소비자가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선불전자지급수단(포인트)에 대해 관리를 발행주에게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화는 어렵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서서 '내가 대신 관리 해줄께'라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수익 모델이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에 해피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제휴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포인트 결제는 좋게 말하면 기업이 발행한 현금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전부 부채이기 때문에 내가 대신 관리 해줄께 하는 사람에게 선뜻 돈을 지불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EU 처럼 기업이 연합으로 통합 포인트를 만들면 어떨까? 그러나 이것도 대안은 아니다. 포인트는 기업이 발행한 현금이다. 말이 현금이지 부채다. 상품이 많이 팔리는 곳은 상관 없지만 덜 팔리는 곳은 상품이 팔린것도 아닌데 포인트에 대한 기여금을 지불해야한다. 또 자사 상품이 아닌데 다른 기업 상품이 팔린데에 대한 부채를 짊어져야한다. 혜택도 제안해야하고 할인률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으면 통합 포인트는 유지되기 어렵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누군가 기똥찬 수익 모델로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키오스크의 결제 지옥은 그래도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현재 키오스크는 사용이 불편하고 어렵다. 보편적 키오스크라는 과제를 안고 점주와 사용자의 편의를 둘다 고려해야한다는 어마무시한 문제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편리해질 것이라고 한다.(불편을 겪는 세대가 다 죽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인류의 역사는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표준안이 없다면 관련 기업이 모여서 표준을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면 좋겠다. 그게 보편적 사용성을 위한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기획자와 디자이너와 소통을 통해 사용성을 더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접근성을 고려 해서 개발을 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사실 나도 노력해야한다 말만하고 실천을 못해서 좀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강제성이 생기면 군말 없이 해야하니까 더 정부에게 표준안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도 함께 대안을 찾기 위해 논의하고 방향을 찾아가는 곳이 늘어나고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키오스크를 만들기 위한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고 현실에 반영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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