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글 아닙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주절주절 적은 글입니다.
평점 : ⭐️⭐️⭐️⭐️ (5개 만점)
스포는 없지만 스포를 의미하는 문장, 단어가 포함되어있으니 영화 보실분은 읽지 않을 것을 권장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타자를 정의할 수 있는 존재지만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사실 아이러니하다라기보다 정의 해줄 수 있는 타자가 존재하지 않다고 보는게 맞다. 인류는 우주가 무엇인지,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정의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무엇인지 의미를 모른다. 개미가 인간을 보고 '인간은 이렇다.'라고 정의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유형학적으로 인간 상을 분류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사주, 관상, 혈액형 심리학, 골상학, MBTI, 애니어그램, 세대주의 등이 그런것에 속한다. 인간은 우주보다 복잡한 존재이지만 인간 그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힘들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INFP나 B형 남자, 8번, MZ 세대와 같은 한 단어로 타자를 정의하고 싶어한다. 매우 쉽고 빠르다.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서 타자를 쉽고 빠르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의미를 완전하게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에 완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타자를 정의하는데는 쉽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완전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가 뭐라고 듣다가 집에 와서는 나의 의외성을 보고 놀란다. 의외성은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다 우울함 그 자체다.
의미를 상실한 시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한다.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누가 악이고 선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벌어진 사고를 보고 발만 동동구를 뿐이다. 신난 사람들은 이슈를 가지고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 뿐이다. 사람이 죽고 증오가 쌓여가는데 여기에서 사건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분노가 가라앉고 학살이 끝나면 남은건 폐허와 상처 뿐이다. 그뿐인가. 요즘 접하는 사건 사고를 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끊기지 않고 생긴다.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나다보니 이제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 이하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능보다 가치 없는게 '누군가의 사망' 기사다.
인종, 성별, 가족, 민족, 도시, 사회, 정치, 역사 등 여러 분야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꼭 현대에 와서 그 의미의 경계가 희미해져간다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정보를 담는 그릇이 커지면서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뉴 미디어는 개인이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기 때문에 다양해 보인다. 이 포스트 모던의 산물은 인간의 역사를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기기 위한 좋은 시도였지만 그건 실패한 것으로 보여진다. 오히려 의미의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인간은 극단과 극단으로 벌어진다. 이것은 전체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볼 수 있다. 뉴미디어의 등장이 마치 개인이 역사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일으킬뿐 사실 그대로의 역사가 개인화 되지 않는다. 여전히 인류는 '덩어리(군중)'으로 보이고 집단으로 움직인다. 경계는 점점 더 선명해져간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상징으로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제목 그대로의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주인공은 의미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완전한 것을 쌓아 올리는 것을 거부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우리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의미다. 누가 쌓았기 때문에 역사가 완전해지고 누가 쌓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는 것을 거부한다. 적의를 품었던자도 세상을 망쳐버린 악인도 가족도 전쟁도 그 무엇도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선택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