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바쁘다. 요즘 상황은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상황이 여유롭다고 판단했었는데 갑자기 바빠졌다. 덕분인지 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시기에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그래서 노트를 펼쳐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았다. 적고보니 너무 많다. 그래서 반드시 해야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중에 가까운 미래에 할 수 있는 것을 적어보았다. 그래도 많다.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 중에 두가지만 선택해서 하고 나머지는 시간이 허락되면 조금씩 해보기로 했다.
항상 무언가 시간을 쪼개서 하다보면 시간이 많으면 완벽하게 더 잘 해낼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하지만 주말만 되면 침대 위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지랄말라고 소리친다. 내면의 불안함이 완벽함을 부추긴다. 완벽하지 못할빠에 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내 인생에 완벽한 상황은 없었다. 항상 시간에 쫓겼고 준비가 덜 되어있었다. 그래도 그냥 해야하는 일은 어거지로라도 했다. 결과가 좋지 못해서 그렇지.
해외 여행을 가기에 좋은 상황은 언제일까? 그딴건 없다. 그냥 최대한 가까운 시간에 비행기 표를 사면 된다.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표를 사는 순간 여건은 스스로 만들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나는 취업 시장에서 나를 팔기 위해 열심히 이력서를 넣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고나라에 올린지 1년정도 된 피아노를 누가 사겠다고 했다. 거래는 잘 되었고 돈이 생겼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몇 일 뒤 지인이 태국 한달 살기를 하러 간다고 했다. 전혀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취업 준비를 하면서 들었던 특강에서 멘토님이 우스게 소리로 '삶은 비동기로 살아야한다.'는 말을 했다.(취업해서 요청 슬렉을 보낼때 하면 안되는 것을 설명하다가) 그래 어차피 이력서를 넣어도 대기하는 시간도 길기도 하고 가서 한달 내내 놀러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이력서 넣어 놓고 노마드 한다고 생각하고 가자. 그리고 비행기표를 사고 출발 전에 열 곳 정도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태국으로 날아갔다.
방콕에 도착한 첫날 밤을 세웠다. 빌린 집 창문이 이중 창문이 아니었고 내가 머무는 방 베란다에 에어컨 실외기가 있었다. 밤을 세우고 아침이 되었지만 여전히 잠을 잘수 없었다. 게다가 이력서 넣은 곳중 한 곳에서 과제 면접을 내주었기 때문에 과제를 해야했다. 노트북을 열고 코드를 작성하는데 머리가 띵했다. 한 9시쯤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겼다. 3일밖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했다. 한국과 방콕 시차가 2시간정도 되서 이미 한국은 8시였다. 그러니까 서류 통과를 하게 되면 방콕에서 일찍 일어났다 한들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두 시간이 지난 뒤였다. 태국에서 사는 지인들을 오후에 만나기로 해서 더더욱 오전을 날릴 수 없었다. 오전 내내 과제를 했지만 그 코드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후에 지인을 만나고 또 스타벅스로 가서 과제를 했다. 그런데 정말 기적처럼 그날도 잠을 못잤다. 이틀간 밤을 세우니까 걸어다닐 힘도 없었지만 그냥 스타벅스로 무작정 걸어갔다. 커피를 시켜놓고 계속 과제를 했다. 그날 일기가 없어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틀째 밤은 잠을 잔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날 6시에 일어났다. 과제 마지막 날이라서 다시 스타벅스로 나갔다. 과제를 제출했지만 요구사항을 다 채우지 못해서 혼자서 우울해졌다. 그때 우울한 마음 달랜다고 BTS 타고 프랏카옹에서 종착역까지 그냥 멍때리고 갔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대학생 이후로 정말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면(군대, 약속, 여행 같은거) 점심 지나서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취준 할 때도 8-10시 사이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방콕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했다. 6시쯤 되면 스쿰빗 거리는 사람들과 자동차 오토바이로 가득 찼고 러시아워 소리는 내 방에 적나라게 들려왔다. 아싸리 잘됐다. 어차피 여행 온 김에 아침에 나가서 공부하다가 오후에 점심 먹고 방콕이나 돌자는 마음으로 매일 일어났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과 불안은 사라졌다. 서류도 3개 통과를 했으니 결과는 나름 좋았다. 옥상 수영장에서 아침에 수영하고 수영하기 싫은 날은 런닝머신에서 달렸다.(스쿰빗 거리에서 아침에 한번 달렸었는데 폐암 걸릴 것 같아서 그만 뒀다.) 자주가는 쌀국수집이 생겼고 똠양꿍과 쏨땀을 먹을때 정말 행복했다. 스쿰빗 역 가기전 육교에서 다리를 건너면 있던 스타벅스를 거의 매일 갔었는데 한국에 돌아올 때 쯤에는 들어가서 인사만 해도 주문도 안했는데 내 이름을 불러주고 아메리카노를 내려주었다. 끝나고 돌아왔을 때 취업 준비를 하면서 완벽한 상황을 만드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여건이 되는대로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고 불러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면접을 봤다. 그냥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더 완벽하지 않다. 개발을 하다보니 하고 싶은게 생겼고 회사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스스로 내가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맞춰 나가야한다. 두 가지를 다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우울해하는 날이 더 많다. 뭐 그것 뿐인가? 인간 관계, 연애, 결혼 계획, 집 문제 등등 밀려 들어오는 문제를 혼자서 처리해야한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나면 두 시간은 순삭이다. 일은 쉴수가 없기 때문에 회사의 요구사항에 나를 계속 맞춰나가다 틈새를 만들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줄 알았지만 그냥 쉰다. 젠장. 아직 시간 관리를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선택과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체력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어쨌든 계속 한다.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하는 건 없다. 그냥 하기 위해서 시간을 만들어야한다. 지금은 일단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