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을 사서 요리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소시지 야채 볶음, 삼겹살, 베이컨 토마토 스파게티를 매번 돌려 먹는 것도 지루하다. 원래 밥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혼자 살면서 더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로 하면서 반찬을 미리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주말마다 재료를 사서 다듬고 게 다였는데, 이제는 데치거나 끓이는 것도 필요해졌다. 매일 기름진것만 배에 넣다보니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혼자 살면서 신선한 채소를 사는 건 큰 결심이다. 건강하게 먹고 싶다고 흙이 묻은 채소를 사면 결국 집 안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스스로 몸에서 생명을 틔워내기 때문이다. 흙 한톨 없는 자취방에서 싹을 틔워 내는 일은 기적이다. 시간이 지나 열매를 맺지 않으니 농사와 다르다. 썩은 채소를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담고 창문을 열어 집을 환기하고 날파리를 박멸하는 동안 밀려오는 환멸감은 마트에서 채소를 카트에 넣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썩을 식재료를 사느라 돈을 쓰고 직장에서 점심을 먹는데 또 돈을 쓰고 저녁은 귀찮으니 썩는 채소를 슬쩍 보고 냉장고를 닫아버린다. 그러나 카드값이 월급의 50%를 찍었을 때, 위기감이 밀려왔다. 위기 관리를 하기로 했다. 도시락을 싸자. 돈을 아끼는 건 어렵더라도 내가 구매한 것을 소중히 여기자. 전략은 금요일에 식재료를 사고 주말에 반찬을 한다. 그리고 주중에 그 반찬을 모두 다 해치운다.

내가 할 줄 아는건 얼마 없다. 집에 구비된 향신료라고는 소금과 후추가 전부다. 처음엔 리액트에서 처음 GET API를 호출했을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2주가 지나니 내가 하는 요리가 물렸다. 일본식 카레가 절정이었다. 이상하게 내가 한 음식은 맛이 없다. 요리를 해본적이 많이 없고 나는 요리사가 아니니 당연한거지만 그래도 좀 먹을만 해야 할 텐데. 다른 직원들이 싸오는 도시락은 촉촉한 밥에 맛있는 반찬이 놓여있는데 이상하게 내 쌀밥은 푸석푸석하고 반찬은 매말라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반찬가게에서 사먹을까.'

하지만 저번에 반찬가게에서 사먹었던 소시지 야채 볶음은 내가 한 소시지 야채 볶음보다 맛이 없었다. 게다가 무척이나 비쌌다. 이 가격이면 원재료 소시지를 1kg 살 수 있는데. 그때부터 반찬가게는 발을 끊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가성비가 떨어진다. 그래서 또 2주간 도시락을 싸다 말다를 반복했다.

냉장고를 한번 다 털자 허탈해졌다. 금요일 저녁에 장을 보러 가야하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저번주 금요일은 배포하는 날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많은 날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기는 싫었다. 8시에는 8시 반까지만. 8시 반에는 9시까지만 계속 미루다가 9시 반이 되어서 마트에 갔다. 10시 쯤 마트에 도착했다. 카트를 끌고 가면 또 쓸데없이 이것저것 많이 담게 되니까 빈손으로 보안 검색대를 지났다.

냉동 식품 코너를 지나는데 생선가스가 눈에 들어왔다. 몇달 전 여름에 피쉬 앤 칩스가 먹고 싶었다. 냉동 대구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지웠다를 몇번 반복했었다. 결론적으로 집에서 튀김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하지만 잃어버린줄 알았던 욕망이 되살아났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고 튀김 봉지를 집었다가 다시 넣어 놨다. 튀김 봉지는 꽤 컸고 이 튀김을 사면 하나 먹고 몇달간 냉동실에 처박혀 있다가 음식물 쓰레기 봉지로 죄다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몇 분을 냉동실 앞에서 고민하다 빈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몇걸음 안가서 던킨 도넛 스트로베리 필드 27개입짜리가 냉장고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스트로베리 필드는 못 참지.

돼지고기, 소시지, 버터, 양파, 버섯, 아몬드 우유 그리고 스트로베리 필드가 든 박스를 들고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 늦어서 반찬은 만들 수 없다. 그래도 접시 위에 놓인 스트로베리 필드 세 덩이를 보니 기분이 좋다. 손으로 들고 한입 가득 베어물면 차가운 슈가 파우더가 혀를 적시고 빵 안에 들어있는 딸기 잼이 빵과 섞여 직장에서 있었던 우울한 일을 잊게 해준다. 스트로베리 필드의 장점은 마실것이 따로 없어도 목이 막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몬드 우유를 한모금 들이키면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게 된다. 말씀으로 만들었던 진화로 만들었던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지금 내가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엔 그날의 구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