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리모컨이 두 개다. 하나는 엄마가 쓰는 리모컨이고 하나는 내가 쓰는 리모컨이다. 리모컨이 두 대가 된 사연은 이렇다. 지금 살던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산 티비가 있었다. 언젠가 겨울에 캠핑을 갔다와서 이슬에 젖은 텐트를 말린다며 거실에 텐트를 펼쳐 놓다가 그만 텐트 모서리에 있는 금속이 TV 디스플레이에 부딪쳐 화면에 작은 점이 생겼다. 검정색 작은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처음에는 엄지 손톱의 크기였다. 하지만 곧 스마트워치 화면 만해졌다가 나중에는 주먹만해졌다. 덕분에 이 집에서 나와 함께 있던 TV를 새로 바꾸게 되었다.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큰 화면을 가지고 싶어했다. 화면이 작아서 자막같은 것들이 잘 안보인다고 그러셨다. 그래서 큰, 이왕이면 스마트한 TV로 바꿨다. 덕분에 TV용 리모컨이 하나 더 생겼다.
IPTV는 업데이트를 자주했다. 하지만 셋업 박스는 소프트웨어의 무거움을 따라기 못했다. 점점 느려졌고 점점 사용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밥을 먹을 때만 TV를 보기 때문에 클릭을 하면 긴 시간동안 로딩을 하고 있는 IPTV에 불만이 많았다. 그러다 스마트 TV 리모컨을 들게 되었고 나는 스마트 TV 리모컨만 사용한다.
엄마는 여전히 IPTV 리모컨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전처럼 넷플릭스나 왓챠,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어쩌면 보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업데이트가 되면서 UI가 변경된 부분이 많았다. 업데이트 이전 UI에 익숙한 엄마는 더이상 유튜브나 왓챠, 넷플릭스를 익숙하게 찾아 들어가지 못했다. 나도 찾는데 한참 걸렸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요즘 TV 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더 자주 본다. 짧은 숏츠로 드라마 내용을 대부분 이해하고 줄거리를 마치 본것처럼 이야기한다. TV 드라마는 재방송 시간을 찾아서 본다. 다행이 아직 채널은 숫자로 입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엄마가 TV 드라마의 재방송을 묻길래 왓챠를 결재해서 스마트 TV 리모컨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몇 번이고 알려드려도 곧 잘 사용하지를 못하셨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나를 찾았고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TV 화면에서 컨텐츠까지 처음부터 찾아 들어가는 것도 복습해보았지만 너무 어렵다고 하시고는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8월에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한석규도 아니니 리모컨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엄마에게 화낼 필요도 없다. 엄마가 필요 할 때 내가 틀어드리면 되니까. 하지만 내가 취업을 하고 집을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디지털 양극화
현대 사회는 디지털화 되었다. 사회 일각에선 디지털 문맹이나 디지털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기업은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다. 키오스크 앞,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한 노인처럼 당황한 노인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일이 아니다. 뒤에서 사용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면서 짜증을 낼뿐 앞에있는 노인을 도와줄 만큼 한국 사회가 친절한 사회는 아니다. 이미 디지털로 인한 양극화는 진행중이다.
피자집에서 피자 배달을 하면서 몇 번이고 노인정에 배달을 가게 되었다. 피자가 정말 비싸기 때문에 노인들은 조금 싸게 먹는 방법을 묻곤 한다. 나는 피자 어플리케이션으로 배달을 주문하면 할인을 받으실 수 있다고 말하지만 노인들은 곧 손을 휘젓는다. 핸드폰은 스마트폰이지만 노인들은 전화받는 것도 어렵다. 노인의 떨리는 손가락이 화면에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을 스마트 폰은 잘 알아먹지 못한다. 버튼식이었다면 꾹 누르면 그만이지만 스마트폰은 그렇지 못하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써 디지털 문명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양극단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웹 접근성은 표준이 있다. 키보드 사용을 보장한다거나 스크린 리더기가 웹 화면을 읽도록 하게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만약 개발자가 웹 접근성을 고려한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다면 장애인은 그나마 디지털 소외계층이 되지 않을 수는 있다.(물론 접근성을 고려해서 잘 개발 한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노인들은 장애인이 웹을 이용하는 것처럼 그 방법을 교육받지 않는다.
사실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표준이 없다. UI는 디자인 시스템이 있지만 UX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정부에서 UX 표준안을 공개하고는 있지만 표준안은 권장사항일 뿐이다.(업데이트도 자주 안한다.) 디자인 노인이 자주 들어가는 사이트 이용 방법을 교육 받는다고 해도 매해마다 트렌드가 바뀌고 UI가 변경되고 기업이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이 변하는 사회에서 노인은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에 대한 대비책도 없고 논의도 많이 없다. 프론트엔드 컨퍼런스를 챙겨보긴 했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이나 표준을 만드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뉴스를 보면 유명한 서비스를 하는 기업의 CTO의 인터뷰가 아니라 어느 대학 교수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공허한 소리만 반복될 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국제 표준을 만든다느니 한국 표준을 만든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건 지금 당장 허황된 소리다.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첫 째로, 아직 미생이지만 그래도 나는 웹 개발을 하고 있다. 그럼 그 안에서 웹 접근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겠다. 최근에 아이콘 버튼을 만들 때, 스크린 리더기가 읽을 수 있는 버튼을 만들기 위해 코드를 개선했다. 때론 UI에 글자 없는 Icon만 있는 버튼이 있는데 글자를 숨기더라도 스크린 리더기가 순서에 맞춰 읽을 수 있도록 글자만 숨기도록 했다.
참고 : Accessible hiding and aria-hidden example
회사 퇴사 전에는 접근성을 고려한 웹 페이지를 반드시 만들어야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손을 놔버린 느낌이 있다.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
네이버 부스트코스 웹 UI 개발 - 웹 접근성의 이해를 수강하면 도움이 많이 될 수 있습니다.
둘 째, 만약 회사에 들어간다면 UX 디자이너와 많은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단순히 생각이다. 회사는 떡 줄 생각도 안하는데 벌써부터 떡 맛이 어떤지 고민하는게 좀 이상하다. 하지만 단순히 생각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서 한 권이라도 가벼운 책을 읽어봐야겠다. 예전에 사놓고 퇴사와 동시에 구석에 쳐박아놓았던 서비스 디자인 노트라는 책이 있다. 일단 그 책이라도 읽어볼까 싶다. 그리고 만약 운이 좋게도 이런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라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다.
셋 째, 일상에서 만나는 노인들을 잘 도와야겠다. 만약에 키오스크 앞에 진땀 흘리며 서있는 노인이 있다면 친절하게 도와야겠다. 혹시 어느 노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써서 도와야겠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걸을 때, 나이 많이 드신 분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을 헤매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네이버 지도를 설치해주고 사용 방법을 알려주면서 저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했지만 도움이 됐을 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편의점에 갔다가 나도 똑같은 길을 걸어 갔지만 노인을 발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올레길 이정표가 중간에 뚝 끊겨있었기 때문에 디지털 지도를 이용할 줄 모르면 가기 어려운 길이었다. 그래서 그때 지도를 아날로그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독도법을 또 배워야하기 때문에 결국 디지털 기기를 배우는 것이나 독도법을 배우는 것이나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생각을 접었다. 결국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은 내가 시간을 써야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열심히 하자. 어차피 표준을 만들든 라이브러리를 만들든 자바스크립트 생태계에서는 자바스크립트와 타입스크립트를 잘 해야한다. 그래야 버그 없는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배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무리를 하며
몇 달 전부터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처음 올리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피드보다 스토리를 더 많이 올린다. 그런데 글짜를 넣거나 화면을 확대하는 등의 방법을 몰라서 편집 없이 그냥 올렸었는데 동생들과 인친 맺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편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도 나이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닌데 자주 사용하는 어플 조차도 사용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보다 그냥 익숙한 내용만 반복해서 사용을 해왔던 것이다. 새로움을 어려워하는 개발자도 많다. 아직도 프론트엔드 직군이 무엇인지 모르는 개발도 있다. 프론트엔드 직군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개발자도 있다. 그냥 HTML이나 CSS 그리고 JS 조금 만지작 거리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JS가 아직도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분명 같은 하늘아래 새로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 타입이 무엇인지 외부 간섭을 통해 알아가고 배워가며 조금씩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야겠다.